공유의사결정 (SDM: Shared Decision Making) 시대 커밍순!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그동안은 참 현실적이지 않았던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나’에 대한 중차대한 의료적 결정에서 ‘나’와 ‘나의 가족’이 가진 상황과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곤 했을까 생각해보면, 그렇게 많지 않아 보이는 구석도 분명했으니 말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의료인과 개별 환자 사이 정보격차와 지식격차는 말할 필요도 없으니, 결정에 대한 관여도가 의료진에게 극도로 치우쳐 있음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는 판단도 지극히 합리적이다. ‘나’와‘내 가족’에 대한 의료 행위와 결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전의 방법이 최선이었다는 생각도 가능하단 뜻이다. 이 같은 관행(?)은 의료 소비자가 의료진에게 가장 흔하게 건네는 말로 정확하게 대변된다. “부디...잘 부탁드립니다!”가 대표적 표현이었으며, 물론 존경의 의미를 가득 담은 ‘선생님’ 혹은 ‘교수님’을 붙여가며 절절한 마음을 전할 뿐, 그 외 치료에 대한 세부 사항을 묻는 것은 그다지 볼 수 없는 풍경이었던 것이다. 그저 믿고, 맡기는 방식이 매우 일반적이며 지극히 현실적인 유형이었다. 그런데, 최근 이처럼 오랫동안 아주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의료인 위주의 결정 방식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본격적으로 유입되고 있다. 중요한 의료 결정에 있어 의료인과 환자(가족)가 함께하는 의사 판단 방식이 그것이다. ‘환자-의사가 함께 하는 의사결정’이라 불리며, SDM (Shared Decision Making) 프로세스로 불리는 컨셉이다.

유현재 ㈜하우즈커뮤니케이션앤컨설팅 대표 (매스컴학 박사, 보건정책 석사)
유현재 ㈜하우즈커뮤니케이션앤컨설팅 대표 (매스컴학 박사, 보건정책 석사)
물론, 아예 새로운 개념이라 하기엔 일선 의료 현장에 계신 분들에겐 이미 너무나 익숙하지 않을까 싶다. 다수 연구진이 참여 중인‘환자-의사가 함께 하는 의사결정 모형개발’연구 사업단이 수행한 1, 2차연도의 연구성과만 무려 21편의 논문이 발표될 만큼 활발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논문의 면면을 잠시만 살펴봐도 의료결정에 있어 너무나 매력적인 패러다임이라는 생각이다. 우리네 건강을 가늠하는 그토록 중요한 결정에, 환자도 본격적으로 참여해 가장 합리적인 결정을 추구한다니, 생각만 해도 벅차다. 환자로서, 일반 의료소비자로서는 더욱 그러하다. 연구를 수행하는 의료진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할 일이고 말이다.

SDM이란 개념을 알거나 이해하진 못했지만, 비슷하게 푸근한(?) 느낌을 처음 가졌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삼성병원이었는데, 내시경을 찍은 후 결과를 확인할 겸 추후 치료에 대해서도 들으러 간 날이었다. 진료실에 들어서자, 이전 경험한 병원들과는 뭔가 상당히 다른 ‘아우라’를 마주했다. 의사와는 정면으로 대면하는 구조, 왠지 불편하고 주눅드는 레이아웃이 당연했는데, 삼성병원의 진료실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의료기록을 의사가 보고, 판독한 다음 환자에겐 말만 건네는 구조를 예상했는데, 이 병원은 완전히 달랐다. 의사는 ‘앞’이 아니라 ‘옆’에 앉아 살짝 모니터를 돌려 내게 설명을 찬찬히 해줬다. 나에 대한 의료기록을 마침내 ‘내’가 볼 수 있단 사실에 놀랐고, 길진 않았지만 자세한 설명에 놀랐으며, 향후 치료 과정에서 불편하지 않겠냐는 등 내 의견을 꼬치꼬치 물어봐 감동이었다. 이후 삼성병원과 의사 선생님에게 큰 신뢰를 가지게 된 것은 당연했다.

‘공유의사결정운동’이 시작된 것은 1950, 60년대 미국의 의료계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본격화되고 있는 것은 최근으로 감지된다. 얼마 전엔 관련 국제 학회도 우리나라에서 개최될 만큼 핫한 이슈가 되고 있다 하니 그저 환영할 뿐이다. 학회에서 논의된 주제들을 보면 거의 모든 의료과와 질병 사안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과학적이며 합리적인 SDM을 위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분위기다(예: 중증슬관절염, 저위험갑상선암, 중증아토피피부염, 류마티스관절염 등). 큰 변화, 중요한 변화가 확실하다.

하지만, 이 같은 발빠른 흐름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은 있다. 의료진이 주도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학술적 접근과 함께, 다양한 논의사항들이‘환자들’‘환자 가족들’에겐 얼마나 알려지고, 일반화되고, 설레게 만들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인 것이다. 연구 수행에 있어 실제 의료소비자들의 절절한 목소리를 어떻게 들어서,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모호해 보이기 때문이다. 현재 의료진들이 속속 개발해 세상에 내놓는 ‘환자들을 위한’ 의사결정 도구들이 실제 환자들에겐 얼마나 편리하게 받아들여지며, 현실에서의 사용 가능성에 대해선 어떤 마음인지, 즉 얼마나 소비자 친화적인지 등에 대한 토론은 미비하다는 뜻이다.

SDM이 상당히 학술적이고 과학적인 영역이긴 하지만, 결국 현장에서 중요한 사항은 환자와 의사가 어떻게, 얼마나 효율적으로 소통해 가장 합리적인 결정으로 이어질 것인가에 대한 사항일 것이다. 아카데믹한 성과에 더해, SDM의 배경과 철학은 물론, 핵심적 내용과 사례들을 의료소비자 대상으로 설명, 홍보, 소통하는 노력들이 본격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한다. 실제 의료 소비자들의 격한 환영이야말로, 의료계 전체를 위해서나 초고령 사회에서 극심한 경쟁을 맞을수 밖에 없는 개별 병원 및 의료진들의 서바이벌을 위해서도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공유의사결정’이 갖고 있는 소중한 의미와 내용이 환자들과 ‘공유’가 안되면 소용이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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