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공감정신건강의학과센텀점윤지환원장
삼성공감정신건강의학과센텀점윤지환원장
정신과적 약물 치료에 대해서 걱정하거나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 정확한 사실과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오히려 치료에 대해서 이해하고, 치료시기가 늦어져 더 악화되기 전에 쉽게 진료를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해본다.

정신과의 의학적 치료 역사는, 흔히 심리치료, 상담치료라고 불리는 ‘정신치료’에서부터 시작하였다. 이후로 1950년대에 처음 시작되어 1990년대에 이르러 부작용이 적고 효과가 큰 약제들이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정신과적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꾼 ‘약물치료’가 혁신적인 치료 효과를 나타냈다. 게다가 정신과적 질환은 더 이상 심리적인 문제 뿐 만이 아니라 뇌신경세포 간의 생물학적인 문제가 더 크고, 이에 대한 ‘약물치료’가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것이 현대 정신의학의 주류 이론이 되어가고 있다.

최근 의공학적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뇌수술과 같은 침습적 방법이 아닌, 자기장(TMS), 전기적 자극(ECT, tDCS, TNS) 등을 활용한 비침습적 방법으로 정신과적 질환을 치료하는 ‘뇌신경조절술(뉴로모듈레이션)’이 효과적이라고 입증되면서 치료의 선택 범위는 더욱 넓어졌다. 그리고 AI의 발달과 더불어 ‘디지털 치료제’의 개발도 현재 진행중이어서 치료 방법 선택의 범위는 더더욱 넓어질 전망이다.

위에 서술한 네 가지 치료법 중에서 가장 먼저 시도되어야 하고 필요한 치료는 무엇일까? 예전보다 편견과 치료의 문턱이 낮아졌지만 여전히 고민을 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도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온 분들이라면, 약물치료가 선행되거나 다른 치료와 병행되어야 할 정도로 증세가 진행되어 온 환자들이 대부분이다.
흔한 예로 지속성 우울증, 재발성 우울증, 초발이지만 심한 수준의 우울증에서는 뇌세포간의 정보전달과 적절한 기분 조절을 위해 필요한 신경전달물질이 부족해진 경우가 많으며, 이로 인해 무의욕, 무기력, 피로감, 흥미소실, 불면, 짜증 등과 함께 부정적인 사고의 연속이 따라오게 된다. 우울증을 곁에서 지켜보는 가족과, 심지어 환자 본인조차도 ‘자신의 의지가 부족해서, 나약해서’ 극복하지 못한다고 비난하는데, 이는 초기 치료에서 환자를 가장 힘들게 하고 증세가 심해져서야 병원을 찾게 되는 흔한 이유이며, 힘든 환자를 이해하지 못하고 상처를 주게 되는 가장 흔한 패턴이다.

뇌를 포함한 우리의 신체는 누구나 회복탄력성이라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속적인 외적 스트레스와 내적 갈등으로 인해 회복탄력성으로 회복할 수 있는 상태를 뛰어넘는 기간이 오래 지속되면, 뇌의 신경전달물질이 고갈된 상태가 유지되고 뇌세포간의 정보전달 활성도가 떨어지며, 자율신경의 불균형까지 이른 상태가 이미 우리 몸에서 익숙해지게 된다. 이 시점에서 이미 의욕 저하, 무기력, 삶의 의욕 소실, 신체화 증상 등이 동반되기 때문에 좋은 생활 습관을 아무리 들여 보려 한 들 시작하기조차 어려워진다. 이는 불안 증상이 주가 되어서 스스로는 우울한 기분은 없었다고 느껴지는, 초조성 우울증이라고도 정의하는 불안 증상을 동반한 우울증에서도 마찬가지의 발병 패턴을 갖는다.

상기 질환은 약물 치료를 통해 익숙해져버린 뇌의 신경전달물질 부족의 정상화와 뇌활성도의 원상회복, 불균형해진 자율신경계 기능의 복귀를 통해 급성 증상을 먼저 완화하는 것이 중요하며, 심한 증상이 완화된 후에는 다음 단계의 치료와 약물 치료 유지치료 기간, 약물 감량 시기 등을 반드시 주치의와 상의하여 결정하여야 증세 재발을 방지할 수 있다. 증세가 호전된다고 모든 약물 치료를 임의로 중단하는 것은 재발 가능성을 높인다.

상설한 내용에서는 우울증, 불안 증상으로 한정하여 설명하였지만, 조현병, 조현정동장애, 양극성장애로 진단받거나 상기 진단들의 진단 기준에 나오는 증상이 존재하는 상태라면, 초기 상 다른 치료법을 먼저 선택하는 것보다, 반드시 약물 치료를 초기부터 시작하여야 하고, 증상의 경과와 이를 관찰하고 진료하는 주치의의 판단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증상이 모두 호전(관해)된 후에도 약물 치료를 지속하여야 한다. 조현병, 조현정동장애, 양극성장애인 경우는 뇌영상학적 검사에서 사고와 기분변화를 조절하는 뇌의 부위가 취약하다는 점이 이미 증명되었고, 치료받지 않는 기간이 늦어지거나 지속될수록 악화 속도는 빨라진다는 것이 학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완치’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환자의 마음은 충분하게 이해하지만 사실 정신과적 질환의 대부분은 만성 질환이다. 한번 발병하면 치료를 통해 나아진다 하더라도 대개 1~2년 내에 같은 증상이 재발하고 더 쉽게 낫지 않을 확률이 높아진다. 그래서 급성기 증상이 나아지면 ‘완치’가 아닌 ‘관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다. 치료가 이루어진 후에도 완전한 증상의 관해가 이루어진 경우는 오히려 행운이다. 대개는 현재까지의 의학으로도 일부 증상이 남아있는 ‘부분적 관해’ 상태로 지내야하는 경우 또한 많다.

이런 경우는 비단 정신과적 질환 뿐 아니라 타과적 질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흔히 고혈압, 당뇨병에 비교를 하게 되는데, 경계선 정도의 증상에서는 운동, 식이요법, 체중감량 등이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나이가 들면서 악화되고 진단을 받게 된다면, 약물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약을 한 번 먹으면 평생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정신과 진료 뿐 아니라 내과 진료 중에도 가장 많이 듣는데, 사실 다시 젊어지거나 해당 장기, 세포, 혈관의 기능이 손상 이전의 젊을 때로 돌아갈 수 있지 않는 이상 완치는 불가능한 일이다.

‘약을 한 번 먹으면 평생 먹어야 한다’가 아니라 ‘평생 가는 병에 이미 나는 걸린 거고 약을 먹는 시기가 늦어질수록 증상이 더 나빠지고 합병증이 온다’는 말이 맞다. 사실 이미 평생 질환을 갖게 된 것이고 약물치료를 조기에 시작하여 치료가 늦어져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방지하는 것이 삶의 질에서도, 증상 없이 오래 살 수 있고 장수하는 면에서도 현명한 판단이다. 이미 만성적인 질환을 진단받았고 이것이 어쩔 수 없는 나의 신체적인 상태라면, 이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자신의 의지로만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의학적이고 과학적이지 않은 무모한 도전이 되고, 그에 대한 피해는 온전히 자신이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모든 만성 질환을 진단받은 환자들에게는 힘든 마음이겠지만, 빠르게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마음이 놓이고 증상과 합병증 없이 삶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비법이다. 이는 정신과 뿐 아니라 모든 과의 만성질환에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부분이다.

여러 환자들이 처음 치료를 시작하고 그 치료를 유지하는데 힘들고 복잡한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하고 충분히 공감된다. 하지만 환자의 앞으로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의사가 권하는 조언에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듣고 치료받아 앞으로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글 : 삼성공감정신건강의학과 윤지환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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