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가정의학과의원이상훈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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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의 하와이 제도를 처음 발견한 서양인은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쿡 선장이다. 그는 1778년 선원들과 함께 하와이에 상륙했다. 그는 이 섬을 샌드위치 제도로 이름했다. 샌드위치는 잉글랜드의 한 귀족 백작 가문이다.

제4대 샌드위치 백작인 존 몬태규 (John Montagu 1718~1792년)는 영국 해군 제독으로 해양 탐험을 적극 장려하고 지원했다. 이에 쿡 선장이 샌드위치 제도로 명명한 것이다. 원주민들은 섬을 하와이로 불렀다. 먼 옛날에 바다를 건너온 그들의 선조가 최초로 상륙한 전설의 지명인 하와이키에서 연유했다.

하와이 제도의 이름이 될 수도 있던 샌드위치 백작 작위는 켄트주의 한 지명에서 유래했다. 에드워드 몬태규가 1660년에 초대 백작의 작위를 받은 후 후손에게 세습됐다. 존 몬태규가 태어난지 4년 만에 아버지가 숨졌고, 어머니는 곧 재혼을 했다. 이후 어머니와는 거의 접촉이 없었다. 존 몬태규는 11세에 할아버지로부터 백작 작위를 물려받고, 귀족학교인 이튼 칼리지와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공부했다.

그리스, 터키, 이집트 등을 여행해 견문을 넓힌 그는 귀국 후 상원의원, 육군 대령이 되었다. 28세 때는 전권대사로 참석한 브레다 회의에서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강화조약 체결에 큰 역할을 했다. 30세에 해군경, 35세에 국무대신에 임명되었다. 이후 해군장관, 우편국장, 국무장관을 두루 거쳤다.

해군 장관을 3차례 역임한 존 몬태규 샌드위치 백작은 탐험가인 제임스 쿡의 열렬한 후원자였다. 쿡 선장의 탐험선 4척의 구입 비용을 그가 장관인 해군에서 지원해줬다. 그의 영향력은 하와이인 샌드위치 제도, 사우스 샌드위치 제도, 알래스카의 몬태규 섬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

존 몬태규는 국운이 크게 융성한 대영제국의 해군제독과 장관을 지냈다. 그런데 호사마다라고 할까. 영국의 식민지 아메리카에서 미국의 독립전쟁이 일어난다. 존 몬태규는 정보력 부재로 상황판단을 잘못했다. 전투원들에 대한 보급에 문제가 이어지는 가운데 영국 해군은 스페인 프랑스가 가세한 미국의 연합 함대에 패배한다. 이로 인해 영국은 미국의 독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영국 의회와 국민으로부터 패전의 책임을 추궁당했다. 공직에서 물러났고, 가짜 뉴스에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것이 패스트푸드 ‘샌드위치 사건’이다. 소문은 존 몬태규가 친구들과 카드 도박에 푹 빠졌다는 것이었다. 식사도 잊은 채 카드 도박에 몰입한 그는 시종에게 고기 몇 조각과 빵을 가져오게 했다. 그는 빵 사이에 고기를 넣은 뒤 한 손으로 음식을 먹고, 한 손으로 카드를 쳤다는 것이다. 이른바 샌드위치 탄생 배경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도박이 아닌 일에 몰두해 간편식을 찾다가 만들어진 음식이 샌드위치라는 게 주류설이다. 밤늦게까지 일하는 그는 간식을 먹곤 했다. 버터를 바른 빵에 닭고기를 얹어서 간편하게 먹었다. 야식 경험이 많은 그는 빵 위에 미끄러지는 닭고기를 겹치게 얹어 먹는 스킬을 갖게 됐다. 이것이 주위에 전파된 게 샌드위치라는 게 정설이다.

물론 존 몬태규 이전의 로마시대, 러시아 등 여러 사회에서 빵에 육류, 야채를 싼 음식이 있었다. 그렇기에 샌드위치 원조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나올 수 있다.

샌드위치 등 패스트푸드는 일반적으로 고칼로리, 고지방 음식으로 인식된다. 패스트푸드 섭취 빈도가 높으면 비만 위험이 높아진다. 요즘에는 비만과 성인병 위험이 적은 수제 샌드위치도 많다. 저열량, 저염, 저당의 두부 샌드위치나 탄수화물이 많은 밀 대신 양상추로 만든 다이어트 샌드위치 등이다. 패스트푸는 간편성으로 많은 사람이 즐긴다. 그러나 건강측면에서는 잦은 섭취보다는 가끔씩 먹는 게 바람직하다.

(글 : 삼성가정의학과의원 이상훈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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