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계 리부트부터 AI 신약개발까지…한미약품·화이자·모더나·로슈·릴리가 제시한 암 치료의 미래 리포트

1. 한미약품, STING mRNA로 ‘면역계 리부트’ 선언
한국 기업 중 가장 많은 연구성과(11건)를 발표한 한미약품은 독창적인 면역항암 전략으로 주목받았다. 핵심은 ‘STING mRNA 항암 신약’. STING 단백질을 암세포 내에서 직접 발현시켜 강력한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 접근법으로, 기존 STING 작용제의 한계를 뛰어넘겠다는 계획이다.
동물 실험에선 단독 투여만으로도 암 억제 효과가 입증됐고, 다른 항암제와의 병용 가능성도 커서 향후 면역치료 전략의 판을 바꿀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외에도 p53 mRNA 신약, 이중항체 플랫폼 ‘펜탐바디’, HER2 저해제, SOS1 저해제 등 총 7개 파이프라인에 대한 다채로운 비임상·임상 성과가 공개됐다.
2. 화이자, mRNA 기반 유방암 치료에 도전
화이자는 이번 학회에서 자사의 mRNA 백신 플랫폼을 유방암 면역치료에 접목한 초기 연구 데이터를 소개했다. 특히 mRNA 백신을 기존 면역관문 억제제와 병용했을 때, 암세포 제거 능력이 상승한 것으로 나타나 큰 기대를 모았다.
화이자는 mRNA 기술을 코로나19 백신에 이어 암 치료로 확장하고 있다. 특히 이번 AACR 2025에서는 삼중음성 유방암(TNBC) 환자를 대상으로 한 mRNA 기반 면역치료 후보물질의 초기 임상 데이터를 발표했다.
삼중음성 유방암은 치료 선택지가 적고 재발률이 높은 난치성 암으로 알려져 있으며, 화이자는 기존 항암제와 병용 가능한 mRNA 백신+면역관문 억제제 조합을 통해 T세포 기반의 종양 특이적 면역 반응 유도에 성공했다는 초기 결과를 공개했다.
이는 mRNA 백신의 새로운 적응증 확장 가능성을 제시한 의미 있는 발표로 평가받았다.
3. 모더나, 최초의 mRNA 개인맞춤 암백신 임상결과 공개
mRNA 백신의 원조 모더나는 흑색종(피부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개인 맞춤형 암 백신’의 초기 임상 결과를 발표했다. 암환자의 종양 유전자를 분석해 맞춤형 mRNA 백신을 설계하고, 이를 면역관문억제제 키트루다와 병용한 결과, 재발률 감소 등 긍정적 반응이 나타났다.
모더나는 화이자와 마찬가지로 코로나19 백신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암 치료 분야에서도 오랜 기간 개인 맞춤형 백신 기술을 개발해왔다. 이번 AACR에서는 흑색종(melanoma) 환자 대상으로 한 개인맞춤형 mRNA 백신(MRNA-4157)과 면역관문억제제 키트루다(펨브롤리주맙)의 병용요법 임상 2상 결과를 발표했다.
이 백신은 환자 개개인의 암 조직에서 발견된 네오안티젠(neoantigen) 정보를 바탕으로 맞춤 설계되며, 치료 반응률과 무병 생존률이 유의미하게 개선되었다는 점에서 “암을 예방이 아닌 치료를 위한 mRNA 백신 시대의 포문을 연 사례”로 주목받았다.
모더나는 이를 기반으로 폐암, 췌장암 등 다양한 암종으로 적응증 확대를 준비 중이다.
4. 머크, ‘키트루다’와 병용하는 차세대 콤보 전략 확대
면역관문억제제 시장의 선두주자인 머크는 ‘키트루다’를 중심으로 다양한 병용 전략에 주력하고 있다. 이번 학회에서는 항암 바이러스, 새로운 저분자 항암제와의 병용 전략 데이터를 공개하며 치료 범위를 더욱 넓히려는 시도를 보여줬다.
키트루다는 단독 치료보다는 병용 치료에서 더욱 강력한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에서, 병용 조합의 확장은 머크의 장기 전략으로 보인다.
5. 로슈, AI로 암 환자의 맞춤 치료 전략 제시
로슈는 AI 기술을 활용해 암 환자의 조직 슬라이드(병리 이미지)에서 예후를 예측하고, 적합한 치료제를 추천하는 연구를 발표했다. AI 기반 병리 이미징 분석은 임상시험 설계와 치료 예후 예측을 보다 정밀하게 만들어주는 핵심 기술로, 향후 신약개발 효율성에도 큰 영향을 줄 전망이다.
특히 이번 학회에서 기존의 정밀의학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린 AI 기반 환자 맞춤 치료 플랫폼을 공개했다. 자회사 파운데이션 메디슨(Foundation Medicine)과 함께 개발한 이 기술은 수천 명의 암 환자 유전체 분석 데이터를 AI로 처리해, 환자의 돌연변이 패턴과 종양 미세환경 정보에 기반한 약물 반응 예측 모델을 구축했다.
이 플랫폼은 특히 비소세포폐암(NSCLC) 및 췌장암 환자 대상 임상에서 예측 정확도 80% 이상을 기록하며, “환자 맞춤 치료의 실현 가능성을 AI가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로슈는 이 플랫폼을 자사 면역항암제 및 표적치료제 파이프라인에 통합 적용할 계획이다.
6. BMS, CAR-T 치료의 진화형 공개
세포치료제 분야에서 강세를 보이는 BMS는 CAR-T 치료제의 내성 극복 전략과, 다중 타깃을 공략하는 차세대 플랫폼에 대한 비임상 데이터를 공개했다. 특히 고형암에 도전하는 CAR-T 치료 전략이 눈길을 끌었다.
7. 릴리, KRAS 저해제 대열에 합류…병용요법 성과도 공개
일라이 릴리는 AACR 2025에서 KRAS G12C 저해제 후보물질과 여러 항암제와의 병용요법 데이터를 발표하며, KRAS 표적 항암제 시장에서 본격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 KRAS 변이는 특히 췌장암, 대장암, 폐암 등에서 흔히 발견되지만 오랫동안 '치료 불가능한 타깃'으로 불려왔다.
릴리는 경쟁사 아미젠트(Amgen)의 ‘루마크라스(Lumakras)’와 미러티(Mirati)의 ‘크라스티어(Krazati)’와 달리, 자사 약물은 내성 발생을 늦추는 새로운 기전과 약동학적 장점을 갖췄다고 강조했다. 특히 EGFR 저해제, MEK 억제제, 면역항암제와의 병용에서 유의미한 항종양 효과를 보였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이번 AACR 2025는 단순한 신약 발표를 넘어, ‘어떻게 더 빨리, 더 정밀하게, 더 안전하게 암을 이겨낼 것인가’에 대한 집단적 고민과 해답이 교차한 자리였다. 한미약품을 비롯한 국내외 기업들은 이제 단일 타깃을 넘어, 복합적이고 맞춤형 전략을 통해 암 치료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2025년 이후, 이 자리에서 소개된 신약 후보들이 실제 환자 치료에 얼마나 빠르게 다가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김혜연 기자
ciel@healthi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