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현 중앙대병원 게임과몰입힐링센터장
오랫동안 게임중독 문제를 연구해온 중앙대병원 게임과몰입힐링센터 한덕현 센터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디지털 세상이라는 평등하고 수평적인 공간에 계급이 구축 중이다”며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혼란을 제대로 인식하고 바라보아야 리얼월드(현실)와 디지털 세상을 건강하게 공존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Q.디지털중독 등으로 뭉뚱그려졌으나 최근 SNS, 인터넷 커뮤니티, 유튜브 등으로 중독의 양상이 다양해지고 있다. 각 중독의 양상이 다른지 우선 묻고 싶다.
당연히 다르지 않다. 애초에 90년대 게임중독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때 논점 중에 컴퓨터나 인터넷 과사용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범위가 너무 커지다보니 연구와 정의 등에 한계가 지적됐고, 이러한 이유 때문에 게임이라는 한정적인 카테고리만 남아, 2019년 게임사용장애(Gaming Disorder)가 세계보건기구(WTO)의 질병코드로 등록(국제표준질병분류체계 11판)됐다. 애초에 이들 모두를 묶어 인터넷관련 사용 장애로 바라보고 연구 되었어야 한다. 어떤 종목(게임, SNS,인터넷 커뮤니티)에 과다한 시간을 사용하던지 기저는 비슷하다. 충동조절장애다. 단순히 노출되는 빈도가 높다고 중독으로 치부한다면, 한국인의 대부분은 밥중독일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밥에 중독됐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섭식장애라고 한다. 사회적 통념으로 밥은 위험한 것이 아니다. 다만 먹는 이의 식습관이 일상생활에 지장을 준다면 식습관에 초점을 맞춰 이를 치료해야 한다. 디지털중독 역시 마찬가지다. 인터넷사용장애는 개인의 충동조절에 더 초점이 맞춰져 연구되어야 한다고 본다.
Q. 말씀대로 디지털중독은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중독이라고 볼 수 있나?
이는 정의하기 어렵다. 게임사용에서도 그러했듯 디지털 중독을 질환으로 편입시키기 전에 보다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기능장애, 기능손실이 있을 경우에 중독이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중독 역시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면 치료가 요구되는 질환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이것이 디지털 자체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게임중독과 관련된 많은 이들이 공존질환을 가지고 있었다. 인터넷이나 SNS로 사회참여와 소통이 손쉬워지면서 기존 병증과 관련된 여러 증상이 디지털을 통해 빈번하게 표현되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Q. 과거 청소년의 게임과몰입의 요인을 소통요구와 기대실현 욕구로 설명하신 바 있다. 지금 디지털 중독의 요인은 무엇이라고 볼 수 있나?
게임, SNS, 인터넷 커뮤니티 등은 알고리즘과 피드백 형태의 차이가 있으나 유저들이 몰입하게 되는 요소는 비슷하다. 빠른 피드백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평등한 기회다. 우리는 평등한 세상을 살고 있다고 교육받지만 현실에서는 나이, 직책, 재산, 권력 등 수많은 계급이 존재한다. 하지만 디지털 세상 속에서는 내가 어떤 사람인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저 내가 하는 말과 행동에 따라 피드백이 달라지고 존중받을 수 있다. 결국은 인정 욕구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인간의 본능이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웃고 애교를 부리는 것은 좋은 반응(피드백)을 얻고 싶기 때문이다. 성장 후 부딪히는 현실에서는 좋은 피드백을 얻는 것이 점점 힘들어진다. 하지만, 디지털 공간에서는 내가 어떻게 하는 가에 따라 쉽게 좋은 피드백을 얻게 된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평범한 사람이 만명에게서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유튜브에서 말도 안되는 음식을 먹거나, 화제가 되는 행동을 하면 수많은 이들에게 관심과 인정을 받게 된다. 인정욕구가 쉽게 채워지는 것이다. 최근에는 디지털 속의 유명세가 물질적인 보상으로도 이어지면서 몰입을 더욱 부추기는 모양새다.
Q. 젊은층이 디지털 세상에 과몰입하는 이유가 평등함 때문이란 뜻인가?
정확하게는 새롭게 계급을 획득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현재 사이버세상에서는 현실의 계급과 다른 계급이 구축 중이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디지털 세상에도 계급이 뚜렷하다. 높은 계급일수록 많은 주목을 받고, 의견이 존중받는다. 다만 현실의 계급이 미치는 영향이 비교적 적다. 평범한 사람도 유명해지면 높은 계층으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열리는 것이다. 특히 좁은 세상 속에 같은 나이 대에 비슷한 교복을 입고 부대끼는 청소년들은 디지털세상 등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계급을 높은 곳에 두고 싶어 한다. 이들에게서 디지털 과몰입이 흔하게 보이는 이유다. 반대로 나이, 돈, 지위 들을 갖춘 높은 계급은 디지털에 몰입하는 정도가 덜하다.
Q. 최근 성별, 정치성향, 계급 등의 분열이 심해지고 포용적이지 못한 사회 분위기의 원인 중 하나로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디지털 세상의 화법이 지적되기도 한다.
현실에서도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이들끼리 뭉쳐있다 보면 비슷한 일이 생긴다. 주장은 점점 공고해지고 다른 의견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되는 것이다. 다만 현실에서는 1,2,3..을 모두 조망하고 통합해 10으로 만드는 탑다운 방식의 사고가 우선된다. 통합과 정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이슈는 위(정부, 정당, 기관, 지도부 등)에서 정한 것을 따른다. 하지만 이합집산이 쉬운 디지털 공간에서는 나와 다른 주장을 굳이 통합하지 않아도 된다. 나와 같은 의견을 가진 이들과 뭉쳐 목소리를 쉽게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배타성이 강해지고, 더 공격적이 될 수 있다. 이런 집단적인 행동이 선동적 폭력적으로 변하는 것이 문제다. 예를 들어 특정인을 향한 사이버렉카(거짓뉴스 유포) 혹은 사이버불링(인터넷 상의 괴롭힘) 현상이나, 대립하는 집단에 대한 테러 등이다. 이는 건강한 디지털 세상을 누리기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다.
Q. 앞으로는 메타버스 등 새로운 방식의 온라인 소통이 늘어나게 된다. 현실과 사이버세상의 건강한 공존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나?
코로나19 때 대면업무가 온라인업무로 전환되면서 사람들의 인터넷 사용시간은 크게 늘었다. 여가 시간도 인터넷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하지만 인터넷사용장애로 병원을 찾는 이들은 도리어 줄었다. 인터넷 사용 시간이 늘어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가 됐기 때문이다. 메타버스 등의 발전과 그에 따른 여러 영향력에 대해 연구하고 대비해야 하는 것은 맞으나 미리 지나치게 걱정하거나 경계할 필요는 없다. 온라인은 여러 작용과 부작용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리얼월드(현실)도 마찬가지다. 범죄, 루머, 이지매, 대립 등은 사이버 상에서도 현실에서도 일어난다. 보다 중립적이고 통합적인 시각을 가지고 이를 봐야할 필요가 있다.
Q. 그럼에도 사이버 상에서 이뤄지는 부작용을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개선하기 위한 방법이 있다면?
다만 현실과 사이버 세상의 건강한 공존을 위해 사회적으로 합의될 수 있는 규범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인류는 안전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수천년간 예의범절과 법 등의 규칙을 만들고 적용해왔다. 사이버세상은 새로운 방식으로 계급이 만들어지고, 새로운 방식으로 정보와 의견이 교류되는, 어떤 면에서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세계를 위한 규칙과 규범 그리고 교육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논의가 이뤄질 때라고 본다.
김지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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