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진 대한디지털치료학회장
국내에서도 10여개의 기업이 개발에 착수해 올해 말 국내 1호 디지털치료제 탄생이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지난 8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바이오∙디지털헬스 규제혁신을 선언하고, 대한디지털치료학회(Korean Society for Digital Therapy)와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등 정부도 대응에도 속도가 붙었다.
이렇게 디지털치료 시대가 성큼 다가왔지만, 일반대중에게 이는 여전히 낯설고 헷갈리는 개념이다. 생리학적, 화학적, 물리적 작용 없이 게임과 가상현실만으로 질병 개선에 유의미한 효과를 가질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로 인해 의료에서 바뀌는 것은 무엇일까? 답을 대한디지털치료학회 김재진 회장(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을 모시고 들어본다.
Q. 우선 대한디지털치료학회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모바일 앱, 게임, 가상/증강현실, 챗봇, 인공지능 등의 소프트웨어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이를 의료적 이용하는 디지털치료제라는 새로운 치료기술이 생겨났다. 디지털치료제는 다양한 의학적 장애나 질병을 예방, 치료, 관리하는 근거 기반의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다. 이 기술이 활성화되다보니 치료제 개발과 사용에 관심 있는 의사와 연구자가 늘고, 이를 실제로 개발해 생산하는 업체도 많이 생겨났다. 그러다 보니 서로의 소통 필요성이 증대되어 우리 학회가 창립되게 된 것이다.
지난해 10월 14일의 창립총회와 12월 3일의 창립학술대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학회에는 디지털치료제의 광범위한 적용성을 반영하듯 정신건강의학과뿐 아니라, 내과, 외과, 가정의학과, 재활의학과, 신경과, 예방의학과 등 다양한 분야의 임상과 교수님들이 임원으로 참여하고 계신다. 또 임상 전문의 말고도 인공지능, 의료정보, 심리학, 약학, 뇌공학 등을 전공하시는 교수님들도 함께 참여하고 있다. 그야말로 다분야의 융합학문 분야 할 수 있겠다. 뿐만 아니라 디지털치료제 개발 전문기업들도 기업회원으로 참여해 활발한 산학협력을 이루고 있다.
Q. 일반인들이 받아들이기에 아직 디지털치료제(DTx)와 웨어러블 의료 디바이스와의 차이점에 대해 모호한 지점이 있다. 디지털치료제에 대한 개념을 정의해주신다면?
식약처는 디지털치료제에 대해 '질병을 예방·관리·치료하기 위하여 환자에게 근거기반 치료적 개입을 제공하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로 기준을 정의했다. 아주 쉽게 설명하자면 자신의 스마트폰에 의료기능의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아 사용하며 질환을 개선하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애플리케이션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건강 관련 애플리케이션보다 훨씬 고도의 기능을 가지면서, 그 효과가 명확하게 입증된 것으로 한정된다.
이에 비해 웨어러블 의료 디바이스는 하드웨어를 가리킨다. 우리 몸에 부착하여 스마트폰을 통해 구동하는 모든 하드웨어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손목시계, 안경, 모자, 가슴 벨트, 손가락 끼우게 등 다양한 형태로 몸에 착용하는 ‘기기’라는 점이 차이가 있다.
Q. 디지털치료제가 만성질환 관리와 정신건강의학과에만 한정된다는 지적이 있다. 이 한계를 뛰어넘고 다른 진료과에도 적용될 수 있나? 가능하다면 그 기전이 무엇인가?
디지털치료제는 일상의 생활습관 관리를 포함한 여러 인지행동치료 요소를 구현하여 제공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약물치료와 차별된다. 임상의사들이 디지털치료제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약물치료의 한계 때문이다. 많은 질환에서 환자의 행동 및 습관, 즉 생활습관은 병의 발생과 경과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기존의 약물치료만으로는 이를 해결하기 어려운데, 이런 점에서 디지털치료제는 매우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이것이 특히 두드러지는 분야가 만성신체질환과 정신질환이다. 그래서 디지털치료제 개발이 이 두 분야에 집중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디지털치료제가 꼭 인지행동치료의 측면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임상 현장에서 디지털치료제를 병원 치료의 보조 수단, 치료 순응도 개선과 동기 강화, 실시간 알림, 온라인 상담 및 교육, 행동 데이터 수집 및 피드백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다양한 진료과에서 활용되는 여러 기능의 치료제들이 개발될 것으로 예상한다.
Q. ‘치료제’라는 이름이 붙을 경우 임상적 유효성이 입증되어야하는데, 진료과별 혹은 기전에 따른 유효성 판단 기준은 어떻게 되나?
앞서 소개했듯 디지털치료제의 정의는 “근거 기반의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다. 여기서 “근거 기반”이 바로 임상적 유효성에 입증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건강기능식품과 약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다. 약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분명하고 엄격한 유효성과 안전성 입증이 요구된다. 디지털치료제는 의료기기로서의 엄격한 임상시험을 통해 유효성이 입증되어야 한다. 특히 일상에서 사용하는 스마트폰과 같은 범용기기를 이용하기 때문에 자칫 너무 쉽게 사용될 수 있다는 위험성이 지적된다. 때문에 효과와 안전, 처방 등에 대한 정확한 기준이 중요하다. 다행히 이에 대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발 빠르게 지침을 마련해 제공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우리 학회 역시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Q. 국내의 디지털치료제의 개발수준과 기반환경 등은 어떤지 궁금하다.
디지털치료제 개발을 위한 기반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제대로 된 디지털치료제가 개발되려면, 환자 치료에 문제가 되는 분야를 이해하는 의사와, 첨단 기술로 문제 해결을 구현 적용하는 개발자의 협업이 필수적이다. 우리나라의 의료는 세계적인 수준으로, 첨단 치료기술 대부분이 국내에서 적용 가능하다. 이 말을 거꾸로 한다면 국내 의료진이 현재 의료기술의 한계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국내의 많은 의사들이 도전정신을 가지고 디지털치료제를 비롯한 새로운 의료기술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또한 디지털치료제의 기반기술이 되는 IT 기술 역시,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강국으로 많은 인재를 보유하고 있다. 디지털치료제 개발을 위한 양대 기반이 매우 견고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환경이 잘 작동하여 실제적인 디지털치료제 개발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도 중요한 축으로 작용하는데, 그런 면에서 정부가 최근 몇년 디지털치료제 개발에 관심을 갖고 R&D에 상당한 투자를 해왔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물론 앞으로 이 부분에 더 큰 지원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Q. 디지털치료제의 보편화 과정 중 건강보험 적용이 큰 전환지점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수가적용에 대한 회장님의 의견과 학회의 노력이 궁금하다.
근거 기반의 디지털치료제는 유효성이 검증되면, 임상에서 실제로 사용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급여화는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다. 문제는 급여화를 위해서는 개발과 사용허가 후에도 여러 국가기관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한 기관을 통과해도, 다음 기관을 통과한다는 보장도 없고. 게다가 모두 통과하려면 1-2년의 긴 기다림이 필요하다. 철저한 유효성 검증을 통해 사용 승인이 되었다면, 급여화를 위한 절차는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디지털치료제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연구자와 개발자들의 바램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8월에 정부가 발표한 ‘바이오∙디지털헬스 규제혁신’ 방침은 매우 환영할 일이다. 급여화의 단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규제혁신의 세부 지침에 대한 논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에 대해 우리 학회는 현장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할 예정이다.
Q. 향후 디지털치료제가 보편화된다면, 지금의 의료시스템은 어떻게 변할 것으로 예상하시는지?
디지털치료제는 병원의 의사와 일상생활의 환자를 치료적으로 연결해주는 새로운 임상 패러다임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는 치료 주도권이 병원에서 일상으로, 의사에게서 환자로 넘어간다는 점이다.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병을 스스로 치료 관리하도록 처방을 내리게 될 것이다.
둘째는 객관적인 정보를 통해 개인에 맞는 정확하고 효율적인 처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의사들이 최선을 다해 환자에게 맞는 처방을 하고 있지만, 환자의 일상을 객관적으로 알긴 어렵다. 진료 시 정보는 환자의 설명과 검사결과에 주로 의존했다. 하지만 디지털치료제가 보편화되면 정보가 정확하게 업데이트되고 의료적 피드백이 바로 이뤄질 수 있어, 보다 정확한 맞춤형 의료가 가능해질 것이다.
김지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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