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욱(단국대학교명예교수)
강신욱(단국대학교명예교수)
어려서부터 한번 마음먹은 일은 끝까지 해보자고 다짐하곤 했다. 지키지 못할 때가 훨씬 더 많았지만 그래도 그리하려고 늘 애를 썼다. 학생들에게 뭔가 교훈적인 얘기를 해야 할 때면 꼰대답게 그렇게 살기를 조언하였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목표나 가치를 끝까지 지키는 게 쉽지 않고, 가끔은 어리석은 게 아닌가 자책도 하지만 잘 고쳐지지 않았다. 잘하든 못하든 경기할 때도 곤란한 공을 끝까지 뛰지 않고 미리 포기하는 사람은 지금도 좀 밉다.

포기하지 않는답시고, 끝까지 해본답시고 집중하다 보면 부상과 곤란이 뒤따른다. 후회할 때도 많고 신체적, 정신적, 그리고 재정적으로 손해가 만만치 않다. 취미와 일의 많은 부분에 있어 그런 경험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리라 본다. 특히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경우 몸이 심하게 망가지고 주변 가까운 사람들과 교류가 소홀해져도 머릿속에는 온통 운동 생각뿐인 사람들이 많다. 과다 운동을 넘어서 운동에 소위 중독된 사람들이다.

도박중독, 알코올중독, 사이버 중독 등에 비해 운동중독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관대해서 그렇지 조사 결과를 보면 동호인의 5% 내외가 이 증세를 보인다. 물론 위에서 열거한 다른 형태의 중독 인구 비율도 그와 비슷하다. 20명 중 1명 정도라는 셈인데 얼핏 들으면 적은 수치 같지만 전체 사회로 보면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니다. 예를 들어 18세 이상 우리나라 성인 인구는 4,425만 명이 조금 넘는데 이들 중 주 2회 이상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비율은 문체부의 보고에 따르면 절반 정도인 최소 2천만 명 정도이고 이 비율을 근거로 할 때 약 100만 명 이상이 운동중독 증세를 보인다고 추산할 수 있다. 본인의 과거 연구 결과 운동 형태나 성별과 관계없이 운동중독자들은 모든 스포츠 현장에 있다. 축구장, 마라톤 현장, 댄스장, 체력단련장, 테니스장 등 어디에도 있다.

운동중독은 한마디로 몸이 심하게 망가져도 운동을 멈추지 않고, 또는 멈추지 못하고 계속하는 일종의 정신 질환이다. 의학계에서는 운동중독을 공식 질병으로 분류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스포츠 현장에는 20명 중 1명 정도, 아니 그 이상의 동호인들이 엄연하게 정형외과와 재활의학과, 그리고 한방의학과를 제 집 드나들듯이 다니며 치료와 운동을 반복하고 있다. 애착, 강박, 내성, 금단증세 등 여타 중독증이 보이는 증상을 운동중독도 동일하게 보인다. 재미있는 것은 자발적 운동 참가자인 동호인들에게서 중독 증세가 보이는 반면 운동강도, 빈도, 정도가 최고 수준인 운동선수들에게는 운동중독 증세가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몸이 망가지면서까지 운동하지도 않고, 일단 다치면 운동을 중단하고 치료와 재활에 집중한다.

운동이 삶의 질을 높이는데 중요한 건 모두가 인정하지만 과할 경우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운동 중, 후에 느끼는 엔돌핀이 마약과 같이 일시적인 기쁨과 진정을 가져오는 것은 틀림없지만 이에 빠지면 손상과 손해가 너무 커진다. 결국 재활 불가능한 상태까지 가서 운동은 물론 일상생활이 커다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운동중독도 그렇지만 '자리 중독'에 빠진 사람도 적지 않다. 신종 중독이 아니고 그 수와 증상 또한 만만하지 않다. 한번 자리를 잡으면 놓지 않으려는 자리 탐욕형, 집 나온 개처럼 먹을 게 있어 보이는 사람 주변을 맴돌며 이 자리 저 자리 킁킁대는 자리 구걸형, 자기만이 그 자리에 적합하다고 착각하며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사는 자리 착란형, 자리에 오르기 위해 떼 지어 다니면서 경쟁자를 끊임없이 물어대는 자리 침탈형, 우직한척 하지만 음해와 권모술수가 가히 천부적인 자리 모략형, 돈이면 모든 자리를 사고 팔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리 장사형 등 유형도 가지가지다.

자리 중독자는 대개 복합 유형에 '정당하지 않은' 공동 특성을 보인다. 다른 중독과 마찬가지로 이것도 내성이나 강박, 금단증세 등 거의 유사한 증상을 잠재하고 있다. 이 또한 병원에 정식으로 등록된 질병은 아니지만 역사가 오래된 아주 몹쓸 질환이다. 운동중독은 자신의 신체 정도만을 망치는 반면 자리 중독은 자신은 물론 단체와 사회에 엄청난 폐해를 끼친다. 그러나 모든 중독 증세와 마찬가지로 자리 중독자들은 자신이 중독에 빠졌음을 감추거나 애써 부인한다. 늘 공공의 이익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봉사를 가장한다. 모든 중독 중에서 가장 너절한 중독이다.

지나침은 모자람보다 같거나 때로는 못하다.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지만 운동을 즐긴다는 것이 자칫 심하게 빠지면 걷잡을 수 없는 곤란에 처하게 된다. 운동은 결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몇 년 전 수술대에 누워 허리 수술을 기다리면서 운동에 심하게 빠졌던 나 자신을 얼마나 후회하고 반성했는지 모른다. 경험상 절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과한 운동을 '스스로가' 절제해야 재미도 오래 느끼고 치명적인 곤란을 피할 수 있다. 몸이 아프다는 시그널을 보내면 반드시 좀 쉬어야 한다. 주변의 동료와 지도자들도 서로 도와야 한다. 만일에 필요하다면 혼자서 애를 먹고 있는 동호인들을 위해 가칭 '운동중독 치유센터'를 보건소 등에 설치하는 것도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여름을 향해가면서 운동 인구가 다시 크게 늘고 있다. 거침없이 가되 절제의 미학이 필요한 시점이다.

(글 : 강신욱 단국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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