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쿠브 미국 국립 알코올 남용 및 중독 연구소 소장 겸 신경과학자는 최근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통해 "노화로 인한 생리적 변화로 혈중 알코올 농도가 더 쉽게 올라가고 행동과 인지 기능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며 "이 같은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고 노인 인구가 급증하는 가운데, 나이가 들 수록 마실 수 있는 술의 양이 줄어드는 이유에 대해 주목할 문제라고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지적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따르면 나이가 들면 체중이 변하지 않더라도 체지방이 차지하는 비율은 증가하고, 체내 수분량이 감소한다.
지난해 5월 의학잡지 '대한신장학회지(Kidney Research and Clinical Practice)'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체중이 정상범위일 경우 3~10세 때 체내 수분은 체중의 62%를 차지하지만 그 이후에는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1세에서 60세 사이에 남성은 크게 변화가 없지만 여성은 55%가량 감소했다. 61세 이후에는 이 비율이 남성의 경우 57%, 여성의 경우 50%로 떨어진다.
알코올은 물에 녹기 때문에 체내 수분량이 줄어들면 음주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앨리슨 무어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이고 캠퍼스 스타인노화연구소 및 건강노화센터 소장은 "80세 노인이 30세 때와 같은 양의 알코올을 섭취하면 혈중 알코올 농도가 훨씬 높아진다"면서 "나이가 들어 마시는 한 잔의 술은 젊었을 때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치며, 술에 취하는 속도도 젊었을 때보다 훨씬 더 빠르다"고 말했다.
또한 여성의 경우 나이에 상관없이 체내 수분량이 남성보다 적기 때문에 알코올의 영향을 받기 쉽다. 알코올 대사를 돕는 효소도 여성이 더 적다. 때문에 같은 체중의 남성과 여성이 같은 양의 알코올을 섭취해도 혈중 알코올 농도는 여성이 더 높아진다.
나이가 들면서 알코올 대사 능력도 변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올리베라 보그노빅 미국 하버드 의대 정신과 조교수이자 맥클레인 병원 알코올, 약물, 중독 외래환자 프로그램의 의료 책임자는 "알코올 탈수소효소, 알데히드 탈수소효소, 시토크롬 P450 2E1 등 알코올을 분해하는 효소의 활동이 나이가 들면서 감소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알코올이 더 빨리 축적되고 더 오래 지속되는 이유다.
또 무어 소장은 "나이가 들면서 뇌도 알코올에 민감해진다"면서 "몸의 움직임과 균형 조절이 어려워져 넘어지기 쉬워지고 판단력과 반응 시간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이 같은 생리적 변화는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40~50대부터 시작해 60대, 70대, 80대로 나이가 들면서 두드러진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노인들이 젊은 사람들보다 더 많은 약을 더 자주, 더 많이 복용한다는 점이다. 특히 처방약(일부 항응고제, 진정제, 당뇨병 치료제 등)과 일반의약품(진통제, 수면제 등)은 알코올과 궁합이 좋지 않다.
특히 간에서 대사되는 약물은 더 위험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알코올이 약물의 대사를 늦추거나 약물이 알코올의 대사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호 작용은 약물의 효과를 약화시키거나 반대로 약효를 강화시킬 수 있다. 또는 강한 졸음이나 소화관 출혈의 위험 증가와 같은 부작용을 유발할 수도 있다.
과거에는 적당한 음주가 건강에 좋다고 여겨졌지만, 이제는 습관적인 음주가 우울증 악화, 혈압 상승, 부정맥 등 건강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또한 알코올은 수면을 방해하기도 한다. 가뜩이나 나이가 들수록 불면증이나 다른 수면 장애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은데, 알코올은 이 같은 문제를 더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숙면을 취하기 위해 술을 마시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제로는 수면의 구조가 흐트러져 깊은 수면 시간이 짧아지거나 수면이 단편화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보그노빅 책임자는 지적한다.
다양한 만성질환에 걸릴 확률도 나이가 들수록 높아지는데, 알코올 섭취가 그 위험을 더욱 증가시킬 수 있다. 습관적인 음주는 간 질환과 두경부암의 위험을 높이는 큰 요인이 된다. 알코올 사용 장애(중독, 남용, 과음 등)는 노화와 관련된 인지 기능 저하와 뇌 위축을 가속화한다.
지난 6월 13일자 국제학술지 '여성건강저널(Journal of Women's Health)'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하루 한 잔의 음주만으로도 여성의 유방암 위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결국 '음주의 위험과 즐거움의 균형을 어떻게 잡아갈 것인가'는 자신의 현재 건강 상태와 복용 중인 약물 등의 요인에 따라 각각 판단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전문가들은 "술이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진는 않지만, 나이가 들수록 위험성이 커지기 때문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표준적인 '1잔'의 기준은 맥주의 경우 약 350ml, 와인은 약 150ml, 그리고 보드카, 진, 데킬라 등의 증류주는 44ml로 규정돼 있다. 모두 순 알코올이 14g 함유돼 있다.
현재 미국 농무부의 가이드라인은 하루 적정량을 남성은 2잔, 여성은 1잔까지로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65세 이상은 하루 1잔까지로 기준을 바꿔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술을 마실 때 안주를 함께 먹으면 알코올 흡수를 늦추는 효과가 있다면서 물이나 무알코올 음료를 술과 번갈아 가며 마시는 등 수분을 충분히 보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종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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