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든스 바이 더 베이(Gardens by the Bay)홈피)
(사진=가든스 바이 더 베이(Gardens by the Bay)홈피)
싱가포르가 발달장애 및 정신 건강 문제를 완화할 수 있는 ‘치유(웰니스) 관광'의 선진 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불안 장애, 치매 등의 증상을 완화할 수 있는 ‘테라피 가든(치유 정원)’과 자연공원이 대거 조성되면서, 이곳을 찾는 내·외국인 관광객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6일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게재된 싱가포르 국립공원관리국(NPB)에 따르면 현재 싱가포르에는 16개의 테라피 가든이 운영 중이며, 2030년까지 후각, 촉각, 미각, 청각, 시각을 자극하는 30개의 무료 치유 정원을 추가로 조성할 계획이다. 이16개 테라피 가든엔 ▲ 블랙라이트 미로 ▲ 심리적 안정을 위한 전망대 ▲ 기억을 자극하는 안내판 ▲ 면역력을 높이는 원예 공간 ▲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장애물 코스 등이 마련돼 있다.

이런 시설의 효과는 과학적으로도 입증됐다. 2022년 4월 국제 학술지 프론티어스 인 정신의학(Frontiers in Psychiatry)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싱가포르 최초의 테라피 가든인 ‘호트파크’를 방문한 92명의 뇌 활동을 분석한 결과, 일반 정원보다 정신 건강 개선 효과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테라피 가든이 ▲기분 개선 ▲감정 조절 ▲스트레스 완화 ▲염증 감소 등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전 세계적으로 웰니스 관광이 확산되고 있지만, 싱가포르는 기존의 ‘스파 중심 힐링’에서 벗어나 과학적 접근을 도입하고 있다. 캐리 퀵 싱가포르 관광청의 이사는 “싱가포르는 치유와 건강 증진을 위한 독창적인 관광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며, ▲미술 치료 갤러리 ▲플로테이션(부유) 치료 센터 ▲빛 치료 스튜디오 ▲힐링 파크 등을 예로 들었다.

싱가포르는 녹지 관광(그린 투어리즘)에서도 선도적인 도시로 평가받는다. 세계 최대 규모의 실내 폭포가 위치한 창이공항, 국립 난초원, 만다이 야생동물 보호구역, 연간 100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가든스 바이 더 베이 등 풍부한 자연 친화적 관광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이와 비교하면 테라피 가든의 인지도는 상대적으로 낮지만, 싱가포르는 이를 중요한 관광 전략으로 추진하고 있다. 2016년 이후 600㎡에서 6000㎡ 규모의 테라피 가든이 지속적으로 조성됐으며, 최근에는 2024년 12월에도 신규 정원이 개장했다.

특히 빛나는 미로부터 전망대까지 싱가포르의 테라피 가든은 발달장애 아동을 위한 맞춤형 설계가 돋보인다.

쥬롱 레이크 가든(Jurong Lake Gardens)에는 자폐증과 ADHD 아동을 배려한 시설이 조성됐다. 대표적인 예가 ‘빛나는 미로’로, 낮 동안 태양광을 흡수한 후 밤에는 은은한 빛을 발산하는 형광광물로 만들어져 있다. 강렬한 조명 대신 차분한 분위기를 조성해 정서적 안정을 돕는다.

싱가포르 최대의 테라피 가든이 있는 웨스트 코스트 파크(West Coast Park)도 자폐증 환자들에게 추천된다. 이곳에는 여러 개의 작은 언덕과 전망대가 마련돼 있어,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방문객들이 주변 환경을 확인하며 안정적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싱가포르의 테라피 가든은 치매 환자의 기억을 되살리는 데에도 활용되고 있다.

쥬롱 레이크 가든에는 과거 싱가포르의 모습을 재현한 사진, 표지판, 장난감, 그리고 전통 가옥에서 볼 수 있었던 체스판 등이 전시돼 있다. 이러한 시각적 요소가 기억을 환기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 밖에도 ▲이슌 폰드 파크(Yishun Pond Park) ▲푼골 파크(Punggol Park) ▲웨스트 코스트 파크(West Coast Park) ▲센바왕 파크(Sembawang Park) 등에서는 허브 가꾸기, 꽃에 물 주기, 압화 만들기 등의 원예 활동을 통해 신경계 기능을 자극하고 면역력을 향상시키는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준 웬(Jun Wen) 중국 마카오과학기술대 관광학 교수는 “웰니스 관광은 단순한 휴양을 넘어 정신 건강 개선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며 싱가포르의 테라피 가든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그는 치매 환자 1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여행을 통해 새로운 환경, 향기, 맛, 사람과의 교류를 경험하는 것이 인지 기능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또한, 싱가포르의 자연 친화적인 여행 경험이 불안 장애와 우울증 완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콴 후이 리(Kuan Hui Lee) 싱가포르 공과대학의 관광학 교수 역시, 테라피 가든이 ‘환경 친화적인 도시 관광’이라는 싱가포르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현재 싱가포르는 국토의 46%가 녹지로 덮여 있으며, ‘60년 녹화 계획(Greening Singapore)’을 통해 지속적으로 녹지를 확대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단순한 녹지 조성을 넘어, ‘가든 시티(Garden City)’라는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지속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가든스 바이 더 베이 인근에 대규모 웰니스 관광 단지를 조성할 계획을 발표했으며, ▲테라피 아트 ▲플로테이션 테라피 ▲빛 치료 등 신개념 치유 체험을 접목한 관광 상품을 개발 중이다.

싱가포르의 치유 관광 전략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관광청은 최근 센토사섬에서 ‘내추럴리스트 나이트 어드벤처(Naturalist Night Adventure)’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방문객들은 야간 열대우림을 탐험하며 소리, 촉감, 향기 등 다양한 감각을 활용해 생태계를 체험할 수 있다.

여기에 싱가포르는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발달장애와 정신 건강 문제를 완화할 수 있는 혁신적인 치유 관광 모델을 제시하며 ‘메디컬 웰니스 관광 허브’로의 도약을 본격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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