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공감정신건강의학과센텀점윤지환원장
삼성공감정신건강의학과센텀점윤지환원장
우리나라의 소아청소년 양육 문화는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많은 면에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맞벌이 가정이 늘어남에 따라 출산휴가 기간이 짧아서 자녀들은 어쩔 수 없이 빠르면 갓 첫 돌이 지나자마자 어린이집에 장시간 맡겨지고, 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조부모가 대신 양육하는 것이 관례처럼 된지가 오래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한 반에 한 두 명 정도로 드물었던 외동 자녀도 현재 초등학생 연령에서는 매우 흔한 상황이 되었다.

이 글에서는 유아기(학령전기)를 ‘영아기(신생아기, 출산 후 18개월까지)가 지나고 취학하기 전까지’로, 아동기(학령기)를 ‘초등학교 1~6학년에 해당하는 시기’로 하고, 소아기는 영아기, 유아기, 아동기를 합한 기간으로 편의상 정의한다.

요즘의 유아들은 형제, 자매가 각기 다른 보육시설의 반이나 학원에 있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서로 만나서 상호 교류할 시간 자체도 부족한데다, 심지어 자녀가 외동인 경우가 낯설지 않을 정도로 많아졌다. 자녀수가 줄어듦에 따라 부모의 자녀에 대한 관심과 보호하려는 마음은 이전에 비해서는 과하게 보일 정도로 높아졌으나, 역설적으로 부모 모두 유아기의 자녀가 함께 지내고 교감하는 시간은 퇴근 후에나 잠시 있을 정도로 짧아졌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학원에서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또래와의 갈등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규칙을 지키거나 지키지 않았을 때, 지각되는 현상에 대한 이해나 개념의 확립 등을 익혀나갈 때 부모로부터 충분한 피드백을 받지 못하고, 충분한 부모와의 교감과 애착 관계 형성, 훈육, 보상 등을 통해서 얻어져야 하는 유아기의 정서적 발달 과제를 달성하지 못하고 결핍된 상태가 되기 쉽다.

대다수의 요즘 부모들은 이러한 부분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유아기의 자녀와 곁에 있는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경제, 사회적 상황에 불가피하게 놓여있다. 이러한 부모들은 부모의 역할이 중요한 유아기의 어린 자녀를 직접 돌보지 못하고 있다는 무의식적 죄책감이 들기 마련이다.

게다가 다른 부모만큼 해주지 못한다는 불안감 때문에 다른 부모가 하는 대로 따라하거나, 부모 자신이 부족했던 부분을 채워주고 싶다는 마음이 크거나, 부모 스스로 되고 싶었지만 될 수 없었던 모습을 자녀에게 투사하여 요구하고 심지어 집착하고 욕심을 내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부모와의 애착형성 등과 같은 상호작용을 통해 유아기에 반드시 형성되어야 할 정서적 발달 단계의 중요성이나 필요성에 대해서는 간과하거나 모르고 있고, 정작 아이의 잠재적 지적 능력을 미처 파악하지도 못한 상태인 경우가 꽤 존재한다. 그러면서도 지적 성숙이 이루어지기에 너무 이른 시기의 유아에게까지 오직 학습에 초점을 맞춘 교육만을 받게 하는 것이다.

소아는 부모로부터 받는 애착의 영속성을 원하고 애착의 영속성이 존재한다는 개념을 형성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 부분에서 결핍이 되면 퇴행적인 모습을 보이기 쉽고, 청소년기, 성인기를 거쳐 성격 장애로 발전하여 사회와 가정에서 적응을 어렵게 하는 요소로 자리 잡게 만들 가능성을 높인다. 자신의 잠재 능력을 뛰어넘는 수준까지의 기대치를 만족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결국 불안감이 가중되고 심지어 어린 나이에 정신적 에너지 소모가 과도하게 되어, 소아기 불안장애에서 나타날 수 있는 각종 신체화 증상이 나타나거나 등원, 숙제 거부 등의 모습을 보이고, 소아기 우울증 증상을 보이기도 하며, 이로 인해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던 능력조차 제대로 발휘하기 힘들게 되는 악순환을 겪게 된다.

현 시대의 아동들은 초등학교 생활을 갓 시작했을 무렵에 부적응과 불안, 우울 등 정서적 문제를 겪기 쉽다. 학교에 진학해서부터는 어린이집, 유치원에서 겪어보지 못했던 수준의 새로운 발달 과제에 맞서게 되나, 그 이전 시기인 유아기에 형성되어야 하는 정서적 발달 단계에서 부모의 도움으로 형성되어야 하는 부분들이 충족되지 못했기 때문에, 다음 단계의 새로운 발달 과제를 완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로 인해서 아동기에 정서적 문제들이 발생할 뿐 아니라, 이후의 발달 단계들도 연쇄적으로 성취해 나가기 힘든 상태가 될 수 있다. 아동은 언어적으로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표현하는데 능숙하지 않으므로, 이는 곧 등교 거부, 나이 대에 맞지 않는 퇴행적 모습, 같은 학급 친구와의 잦은 다툼, 규율을 지키지 않으려는 모습, 대인관계의 불안, 공포와 이로 인해 단체 생활을 피함, 학습 효율과 의욕의 저하, 흔히 배가 아프고 구역, 구토를 하며 식사를 하지 못하는 등의 무의식적 신체화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세대가 변하고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상황으로 인하여 자녀 양육의 형태가 달라졌지만, 사람이 태어나고 성장하여 온전한 성인으로 발달하는 데에 필요한 것은 변하지 않는다. 이 글에서 ‘정서 발달 단계’라고 부르는 표현한 개념은 인간의 성격, 인격을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주는 각각의 단계로, 정신과학과 심리학, 교육발달학에서 모두 중요하게 다루고 있으며, 프로이트는 정신성적 발달단계, 에릭슨은 정신사회 발달단계로 정리하고 명명했다. 소아기는 자녀의 성격 중 많은 부분이 형성되는 시기이며, 한 명의 성인으로서, 독립된 인격체로서 성장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많은 정서 발달 단계를 이루어야 하는 시기이다.

아무리 학습능력이 좋아지고 지능 발달이 잘 되었더라도,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안정적인 정서와 성격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지능은 높으나 어떤 분야에서도 쉽게 이루지 못하고, 우울과 불안을 겪으며 힘든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은 성격 형성이 불안정하기 때문으로, 정서 발달 단계의 결핍에서 비롯된다. 만약 지능이 매우 뛰어나서 성적과 같이 눈에 보이는 부분들에서는 성취하는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자기 자신이 행복하고 부모를 비롯한 가족에게도 행복을 주는 성숙한 인격체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자녀 스스로도 행복하고, 부모도 자녀를 만족스러워할 만큼 올바르게 성장시킬 수 있을까?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아래 내용 딱 하나만 기억하고 변함없이 보여주면 된다. ‘네가 어떤 모습을 보이더라도, 부모는 너를 사랑한단다.’ 이 마음을 변치 않고 가지면서, 일관된 모습으로 꾸준히 보여준다면, 자녀를 성공적으로 키울 수 있다. 모든 정서 발달 단계에서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핵심은 ‘영원하고 변치 않는 무조건적인 사랑, 애정을 보여줄 수 있는 부모라는 대상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글 : 삼성공감정신건강의학과 윤지환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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