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양병원양형규대표원장
서울양병원양형규대표원장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엄씨(46)는 하루의 대부분을 의자에 앉아서 업무을 해왔다. 올해 초부터 대변을 볼 때 피가 조금씩 묻어났지만 항문을 검사 받는 것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병원을 찾지 않았다. 그러나 출혈은 점차 심해졌고 급기야 항문 조직이 밖으로 빠져나와 손으로 집어넣어야만 들어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놀란 엄씨는 병원에 방문했고 치핵이라고 진단받았다.

치질은 치핵, 치루, 치열 등 모든 항문질환을 말한다. 특히 치핵은 항문 질환의 70% 이상을 차지할 만큼 발병 빈도가 높다. 2020년 기준 국내 치핵(치질) 수술은 총 16만 2000건으로, 우리나라 국민이 받은 수술 중 2위를 차지했을 정도다.

치핵은 원래 대변이나 가스가 새지 않도록 막아주고 배변의 충격을 덜어주는 조직이 느슨해져 항문 밖으로 빠져나오는 질환이다. 치핵은 조직이 늘어난 정도에 따라 1~4기로 나눌 수 있다. 1기는 치핵이 가볍게 부풀어 올랐지만 항문 밖으로 나오지 않은 상태다. 크기는 환자가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작지만 종종 출혈이 있을 수 있다. 2기로 진행되면 치핵이 더욱 커져 배변 시 힘을 주면 혹이 밀려 나왔다가 힘을 빼면 제자리로 돌아간다. 3기는 배변을 할 때 항문 밖으로 밀려 나온 혹을 억지로 손으로 밀어 넣어야 항문 안으로 들어가는 정도이다. 4기는 치핵이 다시 들어가지 않고 일상생활에서도 불편을 느낄 정도로 진행된 단계다.

1,2도 치핵은 약물치료 및 식습관 개선 등 보존적 치료방법으로 완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치핵이 3도 이상이라면 수술을 고려해볼 수 있다.
과거에는 치핵 조직을 비정상적인 정맥류 조직으로 보고 주변 항문상피와 점막 등 정상조직을 포함해 광범위하게 절제했기 때문에 통증과 부작용이 심한 편이었다. 반면 최근 각광받고 있는 거상 치질 수술은 항문 피부를 2-3mm만 좁게 절개한 뒤 치핵 조직을 항문 상피를 남기고 도려내는 방식으로 제거하고, 남은 조직을 항문 위쪽 방향으로 거상시켜 원래 위치로 되돌린다. 정상 조직을 적게 절제해 항문협착, 통증, 출혈이 적은 편이고 빠르면 수술 후 1-2일 안에 퇴원을 기대해볼 수 있다. 다만 환자의 항문 상태와 증상 정도에 따라 수술 기간이나 효과는 달라질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치핵을 비롯한 항문질환을 예방하려면 배변은 가급적 3분 이내로 마치고, 의자에 오래 앉아있는 사무직군 또는 장시간 운전을 하는 직업군의 경우 수시로 항문을 조여주는 케겔운동을 시행하는 것이 항문질환 예방에 도움이 된다. 또 흡연이나 음주를 가급적 삼가거나 줄이고 하루에 8컵 이상 물을 마시는 것도 항문질환 예방을 위해 중요하다.

(글 : 서울양병원 양형규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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